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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07-30 15:19:03
    우리의 커피 역사
    조회수 2,671 추천수 167 댓글수 0 스크랩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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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커피 역사]

     

    우리나라에 커피가 전파된 경로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1896년 고종황제가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면서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다고 전한다.

    하지만 <연암일지>에 의하면 1780년 연암 박지원 일행이 중국 베이징에 사절단으로 갔을 때 북학파의 선구적 학자 홍대용이 베이징 뒷골목 상점에서 이상한 물건을 발견하고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이 맛을 보고 '양탕물질'이라고 적었는데, 이것이 최초로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이다.

    그리고 고종황제 이전에도 조선말 상인들이 처음 커피를 마셨다는 이야기가 일기장에 남아 있다.

     

    초콜릿도 명성황후가 처음 맛보았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최초의 커피숍 역사를 살펴보면 당시 독일계 러시아 여성 앙트와네트 손탁 여사가 고종황제에게 유럽의 음식과 차 문화를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녀에 대해서는 고종의 시녀다, 양딸이다, 궁중 하인이다, 서양인 후궁이다 등 많은 말이 있었으나 사실과 다르다.

    <윤치호 일기>에 의하면 손탁은 웨베르 러시아 공사 처남의 처형이며 32세의 과부였다고 한다.

    4개 국어에 능통한 그녀는 웨베르의 추천으로 궁중의 외국인 접대 업무를 맡아 각종 연회를 주관하면서 대한제국 황실과 인연을 맺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할 때 그녀의 도움이 컸는데, 그 보답으로 고종이 하사한 땅에 지은 것이 바로 손탁호텔이다.

    이 손탁호텔 1층에 '정동구락부'라는 살롱이 탄생하였다.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과 부유층 인사들이 이곳에 모여 손탁의 프랑스 요리와 커피를 즐기며 친교를 나누곤 하였다.

    그때까지 황실에서만 마시던 커피가 드디어 일반 백성에게도 소개된 것이다.

    하지만 커피 값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출입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식 다방들이 잇따라 생겨났다.

    특히 영화인들이나 문학인들이 다방을 직접 경영하면서 예술인들의 모임 장소가 되었다.

    근대화와 함께 우리나라 사람이 처음으로 창업한 다방은 1927년 봄, 영화감독 이경손이 종로구 관훈동에 개업한 '카카듀다방'이 시초다.

    프랑스혁명 때 경찰의 눈을 피해 모이는 비밀 아지트였던 술집 이름을 땄다고 한다.

    벽에 탈을 걸어 놓고 턱시도를 입은 이경손이 직접 차를 나르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뒤를 이어 종로 2가 YMCA 부근에 '멕시코'(1929년)와 소공동에 '낙랑파라'(1930년)가 문을 열면서 명동 일대에 본격적인 다방 시대를 열었다.

    다방은 유럽의 카페처럼 문화, 예술, 철학, 문학을 토론하는 공간이 되었다.

     

    천재 시인 '이상'은 24세 때인 1933년, 기생 금홍과 함께 종로 통인동에 '제비'라는 옥호로 다방을 열었다.

    금홍은 이상이 지병인 폐병 치료를 위해 갔던 황해도 배천 온천에서 만난 기생인데, 금홍과 다방을 열고 동거하면서 일어난 일들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 바로 대표소설 <날개>이다.

    제비다방은 가난한 예술인들만 북적거릴 뿐 돈이 벌리지 않아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이상은 제비다방을 정리한 이후에도 인사동에 '쓰루(일본어로 학이라는 뜻)'를 냈지만 얼마 못가 문을 닫고, 명동에 다방 '무기(麥)'를 냈다가 문을 열기도 전에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등 다방을 인수하고 여는 과정을 반복하다가 완전히 빈털터리가 된 후 27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일제강점기의 경성시대는 역사상 가장 불행하면서도 낭만적인 시대였다.

    비록 가난하고 속박 받는 시절이었지만, 신문물을 접한 모던보이, 모던걸들로 경성 거리는 넘실거렸다.

    다방과 커피 문화는 상류층과 유행을 따르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1933년 소공동에 '프리스티'가 영업을 시작하였으며, 명동에는 음악감상실로 유명한 '에리사'가 개점하여 많은 젊은 청춘들과 백수들이 모여들었다.

    러시아풍으로 실내장식한 카페 '트로이카'는 돈 많은 고급 손님들이 애용했고, '라일락' 카페는 손님들에게 외상을 잘 주어 돈 없는 백수들 사이에 인기가 아주 좋았다.

    1940년대에는 음악다방 '휘가로'가 젊음의 전당으로 인기를 모았고, 예술인들의 집합 장소인 '노아노아'에는 바람난 청년들이 북적거렸다.

    그리고 규모가 가장 크고 웅장했던 '오리온'은 전문 다방으로 영업을 시작했고, 프랑스풍으로 고급스럽게 실내장식한 카페 '나전구', 독일 스타일 인테리어로 영업한 '원', 일본식 다방 '이견' 등이 유명했다.

    처음에는 고급스럽고 낭만적이었던 양지의 카페 문화가 세월이 흐르면서 음탕한 음지 문화로 전락되기도 했다.

     

     

    - 『세계커피기행』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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