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nmidang > 커피 이야기]]> <![CDATA[씨익 > eunmidang > 커피 이야기]]> eunmidang > 커피 이야기]]> eunmidang > 커피 이야기 https://ssiig.com 제공, All rights reserved.]]> Tue, 7 May 2024 17:32:00 Tue, 7 May 2024 17:32:00 <![CDATA[로스팅은 과학이다]]>
 

[로스팅은 과학이다]

 

커피집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로스팅 머신은 보통 1,000만 원을 호가하는 비싼 장비다.

콩 하나 볶는 데 뭐가 그리 사치스럽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로스팅은 사치가 아니라 과학이기 때문이다.

한 잔의 커피를 만들기 위해 숱한 시행착오와 열정, 집념의 시간을 필요로 하는 로스팅이야말로 장인의 영역이다.

이것은 커피 아카데미나 창업자 과정에서 몇 주 속성으로 완전히 익힐 수 없는 커피의 본질, 가장 핵심적인 문제다.

로스팅이라는 과정을 통해 원두는 핸드드립으로 결코 어찌할 수 없는 본연의 맛을 '조율'하고 있는 것이다.

로스팅 머신과 그것을 다루는 사람은 커피 맛의 첫 번째 조율사이다.

예를 들어 190℃와 190.5℃의 차이로 로스팅된 원두의 차이는 커피 맛에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까?

0.5℃ 차이로 로스팅된 원두는 미세하지만 분명한 색깔의 차이를 보이며 당연히 맛도 달라진다.

또 장인들은 '2~3초의 로스팅 시간 차이로 커피 맛이 달라진다.' 혹은 '3~4초의 차이로 커피 맛이 달라진다.'라는 표현의 차이로도 의견을 달리한다.

그들에 따르면 로스팅 과정에서 단 1초의 차이로 커피 맛을 미세하게 조율하는 것이다.

장인정신으로 무장하지 않은 '커피 볶는 집'이 비싼 로스팅 머신을 설치해놓고 로스팅이라는 미명하에 손님을 현혹한다면 손님들은 금세 눈치 챌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주문진의 보헤미안에서 슬쩍 들여다본 로스팅실이 연금술사의 실험실로 보였던 것, 바오밥 나무의 마스터가 10년 가까이 로스팅 일지를 거르지 않고 습관처럼 기록해오는 것은 로스팅이 그만큼 섬세하고 가다로우며 중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리라.

그것은 단 1초의 차이를 가지고도 커피의 색깔이, 맛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 『핸드드립 커피 좋아하세요?』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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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 2 Aug 2019 13:55:03
<![CDATA[좋은 커피의 조건]]>

 

[좋은 커피의 조건]

 

좋은 커피의 조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생두의 선택이다.

그 다음으로 로스팅이 중요하다.

불을 이용해 커피 로스터에 커피콩을 볶아서 좋은 맛과 좋은 향을 만드는 과정을 영어로는 '로스팅'이라고 하며, 일본어로는 '바이센'이며, 한자로는 '배전(焙前)'이라고 한다.

커피 열매 속의 씨앗을 분리하여 말린 뒤에 로스터에 잘 볶아야 커피의 좋은 맛과 좋은 향이 발산하고 황홀한 물질로 변하게 된다.

태양의 선물이며 자연의 결실인 잘 익은 빨간 커피 체리를 입으로 씹거나 빨아 보고, 펄펄 끓는 물에 삶아도 커피맛이나 향은 전혀 나지 않는다.

커피 생두를 가공하고 건조한 후 로스터에 불을 이용해 열을 가해야 생두 성분이 변화를 일으킨다.

로스팅할 때는 불의 변화가 커피맛을 좌우한다.

이것이 신의 선물이라고 하는 커피 물질의 탄생이다.

푸른 생두를 로스팅할 때 약하게 볶으면 커피의 향이 나지 않고 신맛이 강한 커피가 되며, 또 반대로 너무 강하게 로스팅하면 강한 쓴맛만 나오는 커피가 된다.

이 모든 물질적인 변화화 화학적인 변화 속에 관능적으로, 직감적으로 로스팅을 해야 한다.

로스터에 불을 이용하는 과정과 절차 속에서 생두의 색깔이 바뀌고, 무게가 줄어들고, 크기가 변하면서 신맛, 떫은맛, 단맛, 쓴맛, 고소한 맛 등 자신이 원하는 느낌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로스팅이다.

 

 

 

- 『세계커피기행』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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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31 Jul 2019 13:31:57
<![CDATA[커피를 즐기면서 마시는 법]]>
 

[커피를 즐기면서 마시는 법]

 

첫째, 머그잔에 담긴 따뜻한 커피를 눈과 마음으로 즐긴다.

둘째, 커피 티포트 속의 커피와 향을 음미하며 머릿속으로 느낀다.

셋째, 입안에 커피 물질을 넣으면서 혀로 단맛, 신맛, 좋은 쓴맛의 여운을 느낀다.

넷째, 커피의 느낌을 입안으로 마지막 비강까지 삼키면서 그 향미와 물질의 성분을 파악하고 뒷맛을 느낀다.

다섯째, 커피를 마신 후에 느낌을 정리하며 코로 올라오는 아로마 향과 머릿속의 잔미를 느끼면서 즐긴다.

 

 

- 『세계커피기행』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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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d, 31 Jul 2019 13:14:15
<![CDATA[우리의 커피 역사]]>

[우리의 커피 역사]

 

우리나라에 커피가 전파된 경로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다.

1896년 고종황제가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면서 처음으로 커피를 마셨다고 전한다.

하지만 <연암일지>에 의하면 1780년 연암 박지원 일행이 중국 베이징에 사절단으로 갔을 때 북학파의 선구적 학자 홍대용이 베이징 뒷골목 상점에서 이상한 물건을 발견하고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이 맛을 보고 '양탕물질'이라고 적었는데, 이것이 최초로 커피를 마셨다는 기록이다.

그리고 고종황제 이전에도 조선말 상인들이 처음 커피를 마셨다는 이야기가 일기장에 남아 있다.

 

초콜릿도 명성황후가 처음 맛보았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최초의 커피숍 역사를 살펴보면 당시 독일계 러시아 여성 앙트와네트 손탁 여사가 고종황제에게 유럽의 음식과 차 문화를 알려주었다고 한다.

그녀에 대해서는 고종의 시녀다, 양딸이다, 궁중 하인이다, 서양인 후궁이다 등 많은 말이 있었으나 사실과 다르다.

<윤치호 일기>에 의하면 손탁은 웨베르 러시아 공사 처남의 처형이며 32세의 과부였다고 한다.

4개 국어에 능통한 그녀는 웨베르의 추천으로 궁중의 외국인 접대 업무를 맡아 각종 연회를 주관하면서 대한제국 황실과 인연을 맺었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신변에 위협을 느낀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할 때 그녀의 도움이 컸는데, 그 보답으로 고종이 하사한 땅에 지은 것이 바로 손탁호텔이다.

이 손탁호텔 1층에 '정동구락부'라는 살롱이 탄생하였다.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과 부유층 인사들이 이곳에 모여 손탁의 프랑스 요리와 커피를 즐기며 친교를 나누곤 하였다.

그때까지 황실에서만 마시던 커피가 드디어 일반 백성에게도 소개된 것이다.

하지만 커피 값이 너무 비쌌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출입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식 다방들이 잇따라 생겨났다.

특히 영화인들이나 문학인들이 다방을 직접 경영하면서 예술인들의 모임 장소가 되었다.

근대화와 함께 우리나라 사람이 처음으로 창업한 다방은 1927년 봄, 영화감독 이경손이 종로구 관훈동에 개업한 '카카듀다방'이 시초다.

프랑스혁명 때 경찰의 눈을 피해 모이는 비밀 아지트였던 술집 이름을 땄다고 한다.

벽에 탈을 걸어 놓고 턱시도를 입은 이경손이 직접 차를 나르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 뒤를 이어 종로 2가 YMCA 부근에 '멕시코'(1929년)와 소공동에 '낙랑파라'(1930년)가 문을 열면서 명동 일대에 본격적인 다방 시대를 열었다.

다방은 유럽의 카페처럼 문화, 예술, 철학, 문학을 토론하는 공간이 되었다.

 

천재 시인 '이상'은 24세 때인 1933년, 기생 금홍과 함께 종로 통인동에 '제비'라는 옥호로 다방을 열었다.

금홍은 이상이 지병인 폐병 치료를 위해 갔던 황해도 배천 온천에서 만난 기생인데, 금홍과 다방을 열고 동거하면서 일어난 일들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 바로 대표소설 <날개>이다.

제비다방은 가난한 예술인들만 북적거릴 뿐 돈이 벌리지 않아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이상은 제비다방을 정리한 이후에도 인사동에 '쓰루(일본어로 학이라는 뜻)'를 냈지만 얼마 못가 문을 닫고, 명동에 다방 '무기(麥)'를 냈다가 문을 열기도 전에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등 다방을 인수하고 여는 과정을 반복하다가 완전히 빈털터리가 된 후 27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일제강점기의 경성시대는 역사상 가장 불행하면서도 낭만적인 시대였다.

비록 가난하고 속박 받는 시절이었지만, 신문물을 접한 모던보이, 모던걸들로 경성 거리는 넘실거렸다.

다방과 커피 문화는 상류층과 유행을 따르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1933년 소공동에 '프리스티'가 영업을 시작하였으며, 명동에는 음악감상실로 유명한 '에리사'가 개점하여 많은 젊은 청춘들과 백수들이 모여들었다.

러시아풍으로 실내장식한 카페 '트로이카'는 돈 많은 고급 손님들이 애용했고, '라일락' 카페는 손님들에게 외상을 잘 주어 돈 없는 백수들 사이에 인기가 아주 좋았다.

1940년대에는 음악다방 '휘가로'가 젊음의 전당으로 인기를 모았고, 예술인들의 집합 장소인 '노아노아'에는 바람난 청년들이 북적거렸다.

그리고 규모가 가장 크고 웅장했던 '오리온'은 전문 다방으로 영업을 시작했고, 프랑스풍으로 고급스럽게 실내장식한 카페 '나전구', 독일 스타일 인테리어로 영업한 '원', 일본식 다방 '이견' 등이 유명했다.

처음에는 고급스럽고 낭만적이었던 양지의 카페 문화가 세월이 흐르면서 음탕한 음지 문화로 전락되기도 했다.

 

 

- 『세계커피기행』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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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 30 Jul 2019 15:19:03
<![CDATA[커피의 발견과 전설]]>
 

[커피의 발견과 전설]

 

커피나무는 수백만 년 전부터 아프리카에서 야생으로 자라고 있었다.

이러한 커피의 발견에 대해서는 에티오피아 양치기 소년 칼디(Kaldi)설과 아라비아 수도사 셰이크 오마르(Sheik Omar)설이 있다.

 

칼디설은 미국 작가 윌리엄 유커스가 1922년 발간한 <커피의 모든 것>이란 책에서 에티오피아 카파(Kaffa) 지방의 양치기 소년이 커피를 발견했다는 전설을 소개했다.

양치기 소년 칼디가 염소들을 돌보고 있었는데, 하루는 염소들이 그날따라 유난히 흥분하여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밤에도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양치기 소년은 염소들의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한 결과, 빨간 커피 열매와 커피나무 잎사귀를 따먹었을 때 이러한 현상을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커피 열매를 따서 직접 먹어 보았다.

소년은 신기하게도 기분이 상쾌해지고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소년은 이런 사실을 이슬람 사원에 알렸다.

항상 잠에 쫓기고 피곤을 느끼던 이슬람 수도사들 사이에서 커피는 급속하게 퍼져나갔다.

그들에게 커피는 잠을 쫓고, 영혼을 맑게 하고, 음식을 소화하는 신의 축복 같은 약이었다.

이때부터 커피가 이슬람인과 아랍인들에게 전파되어 가면서 세계 최초의 문명지 이집트와 터키에서 오랜 세월 속에 정착하게 되었다.

 

또 다른 커피 기원설은 이슬람 수도승 셰이크 오마르가 처음 커피를 발견했다는 이야기이다.

그는 1258년 아라비아의 오사바 산으로 추방되었는데, 배고픔에 못 이겨 산속을 헤매고 다니다가 우연히 새 한 마리가 빨간 열매를 쪼아먹는 모습을 보고 그 열매를 따먹었다는 것이다.

오마르는 이 열매가 피로를 풀고 심신에 활력을 되살아나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는 이 열매를 사용하여 많은 환자를 구제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결국 그동안의 죄가 풀리고 성자로서 존경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 열매가 바로 커피 열매였던 것이다.

 

 

- 『세계커피기행』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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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 29 Jul 2019 15:47:49